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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과 시민정신

1999년 4월. 서울의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은 일단 실패로 끝났다. 분루를 삼키며
농성장을 떠나는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의 뒷모습은 3년 5개월 전 전면 파업을 일으켜
승리를 거두고 환하게 웃던 프랑스의 지하철과 철도 노동자들의 밝은 모습과 서글픈 대조를
이루었다.
나는 여기서 두 나라 노동자들의 파업 양상을 비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번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에 관해 한 가지 사실을 짚으면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즉,
이번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은 '지하철 노동자들이 서울 시민의 발을 볼모로 했던 게
아니라, 거꾸로 지하철 노동자들이 서울 시민의 볼모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은 이구동성으로 "지하철 노동자들이 서울 시민의 발을 보모로 파업을 벌이고
있다"고 떠들어댔다. 이 주장에는 제법 그럴듯한 "시민의 발"이라는 표현과 또 "볼모"라는
자못 자극적인 말까지 들어 있어서 대중 선동의 효과를 십분 발휘하였다. 일반 시민들은 이
주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고, 따라서 이 주장은 여론을 '파업 반대'쪽으로 몰아가는
데에 큰 몫을 톡톡히 했다. 그러면 독자는 나와 함께 이 주장을 '해체'해 보기로 하자.
이 주장, 즉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하고 있다"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파업으로 불편을 겪게 된 시민들의 비난의 아우성 소리가 파업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대신에 시와 정부 당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볼모라는 말이 성립된다.
시민들은 당연히 단체 협약마저 일방적으로 파기한 서울시를 비난해야 마땅했고 또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신에 정리해고라는 신자유주의의 정책을
기조로 하고있는 정부쪽에 비판의 화살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실제는 그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불평 불만에 찬 시민들의 눈초리는 오직 파업 노동자들에게 되돌아가 꽂혔고
오직 그들에게만 비난을 쏟아 부었다. 그게 무슨 볼모인가? 인질자에게 직접 으르렁대고
폭력까지 가하는 볼모(피인질자)를 본 적 있는 사람, 손들어 보시라. 그런 볼모는 이미
볼모가 아닌 것이다. 또한 인질자도 이미 인질자가 아닌 것이다. 또한 인질자도 이미
인질자가 아닌 것이다. 제조업 분야처럼 노사 사이에 시민이 존재하지 않는 부문의 파업과
이번 파업을 비교해보면 실제로 볼모가 되었던 측은 시민들이 아니라 파업노동자들은
도리어 더 자유로웠을 테니까 말이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 했던 예는 파리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 때 그 진실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서울 시민들은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스스로 파업 노동자들과 같은 노동자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사회정의의 실현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믿었고
따라서 파업 노동자들에 연대하였다. 서울 지하철 노동자의 파업이 부분 파업이었던 것과
달리 완전 파업이었고(지하철, 시내버스, 기차가 한 대도 움직이지 않았다) 또 3주씩이나
계속되어 불편함의 정도도 몹시 심했지만 프랑스의 텔레비전 화면에서 "불편하지요/ 하지만
나는 파업노동자들을 100% 지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미소짓는 중년 여성을 볼 수
있었다. 파업 노동자들이 가두 시위를 벌일 때에는 연도의 시민들이 박수를 보냈다. 즉,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스스로 볼모의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파업노동자들을 비난하는 대신에 노동자들의 복지 연금을 삭감하려했던 정부를 비난했다.
60%를 넘는 시민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고 정부는 끝내 두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 문제되었던 사안이 복지연금 삭감이었던 반면에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정리해고 등의 사안이었음에도 3주간이나 전면 파업을 벌였던
프랑스의 노동자들과 달리 부분파업을 벌였을 뿐이다. 그랬는데 프랑스의 파업은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성공했음에 반해 서울의 지하철노동자들은 정부, 언론으로부터 매도당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민들로부터 등돌림을 당했고 결국 파업은 실패했다. 이와 같은 두
나라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프랑스의 시민들은
서로 연대하는 시민정신이라는 성숙된 근대 이념을 갖고 있음에 반해 한국의 시민들은 아직
그렇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 출처없이 캡춰만 해 놓아서 출처를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게 되는 대로 밝히겠습니다. -
- '시민을 볼모로'라고 외치며 노동자가 노동자의 편이 되는 것을 방해하던 언론의 탓입니까, 아니면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탓입니까? 어느 쪽이든 이제는 노동을 팔아 먹고 살기 힘든 시대가 아니라 '노동을 팔기' 조차도 힘든 시대입니다. -

Concentration


If you see any obstacles because you don't concentrate on the object.

Red


Red, not for bulls.
Rojo, no para toros.

우리를 파괴시키는 7가지 요소


첫째, 노동 없는 부(富)
둘째, 양심 없는 쾌락
셋째, 인격 없는 지식
넷째, 윤리 없는 비지니스
다섯째, 인성(人性) 없는 과학
여섯째, 희생 없는 종교
일곱째, 신념 없는 정치

-간디-

KLDP에서 IsExist라는 분의 서명에서 재인용

담배 심부름

한국에 있을 때, KFC Beer(가칭)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맥주와 잘 어울리는 안주인 닭을 파는 KFC에서 맥주를 팔면 좋을 거라는 의견이었다.

그 의견이 이 곳 스페인에선 현실인데, 어제 KFC에서 나이어린 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있는데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보고 생각난 것이 있다.


예전엔 우리나라에도 '담배심부름'이라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었던 것 같다.

어린애가 담배를 산다고 의심하지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던 시절,

입시로 스트레스를 받던 고딩도, 좀 잘나간다던 중딩도 알게 모르게 구멍가게에서, 자판기에서 담배를 사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담배를 끊는게 '대세'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이어가고 있는건지.

찬란한

힘들다고 그렇게 불평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알고있는 게 너무 없었는데,

그래도 찬란하게 빛나던 20대 초반의 날들.

이승엽의 좌우명

아주 단순하지만 지금의 그를 있게한 한마디가 반드시 이 말인 것만 같다.

자질은 있지만 결정적인 한방이 없다던 그 말을 뛰어넘었고,

스윙은 좋지만 파워가 부족하다는 그 말도 뛰어넘었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평범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다.'

Escuchar coreano por la television española. 스페인 방송에서 한국어 듣기

미국 드라마 '로스트'에서 한국인 배우 김윤진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이미 한국에선 유명한 사실이다. 아직까지 그 드라마를 본 적이 없어서 내용도 잘 모르고, 김윤진씨가 일정 부분에서 한국어로 대사를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오늘 저녁 갑자기 텔레비전을 켰을 때, 낯익은 김윤진씨의 얼굴을 보고 반가웠는데, 거기다가 조금 지나서는 그녀의 입에서 연이어 흘러나오는 한국어.

반갑고 놀라운 사실이었다. 스페인의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는 미국 드라마들은 전부 더빙되어 방송되는데 그녀가 한국어로 말하는 부분은 극의 진행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나보다.

굳이 한국어의 위상이 어쩌고라면서 확대해석을 할 필요는 없지만 반가운 마음은 기대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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