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과 시민정신
Tuesday, March 13, 2007 12:14:01 AM
농성장을 떠나는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의 뒷모습은 3년 5개월 전 전면 파업을 일으켜
승리를 거두고 환하게 웃던 프랑스의 지하철과 철도 노동자들의 밝은 모습과 서글픈 대조를
이루었다.
나는 여기서 두 나라 노동자들의 파업 양상을 비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번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에 관해 한 가지 사실을 짚으면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즉,
이번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은 '지하철 노동자들이 서울 시민의 발을 볼모로 했던 게
아니라, 거꾸로 지하철 노동자들이 서울 시민의 볼모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은 이구동성으로 "지하철 노동자들이 서울 시민의 발을 보모로 파업을 벌이고
있다"고 떠들어댔다. 이 주장에는 제법 그럴듯한 "시민의 발"이라는 표현과 또 "볼모"라는
자못 자극적인 말까지 들어 있어서 대중 선동의 효과를 십분 발휘하였다. 일반 시민들은 이
주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고, 따라서 이 주장은 여론을 '파업 반대'쪽으로 몰아가는
데에 큰 몫을 톡톡히 했다. 그러면 독자는 나와 함께 이 주장을 '해체'해 보기로 하자.
이 주장, 즉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하고 있다"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파업으로 불편을 겪게 된 시민들의 비난의 아우성 소리가 파업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대신에 시와 정부 당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볼모라는 말이 성립된다.
시민들은 당연히 단체 협약마저 일방적으로 파기한 서울시를 비난해야 마땅했고 또
노동시간을 줄임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신에 정리해고라는 신자유주의의 정책을
기조로 하고있는 정부쪽에 비판의 화살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실제는 그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불평 불만에 찬 시민들의 눈초리는 오직 파업 노동자들에게 되돌아가 꽂혔고
오직 그들에게만 비난을 쏟아 부었다. 그게 무슨 볼모인가? 인질자에게 직접 으르렁대고
폭력까지 가하는 볼모(피인질자)를 본 적 있는 사람, 손들어 보시라. 그런 볼모는 이미
볼모가 아닌 것이다. 또한 인질자도 이미 인질자가 아닌 것이다. 또한 인질자도 이미
인질자가 아닌 것이다. 제조업 분야처럼 노사 사이에 시민이 존재하지 않는 부문의 파업과
이번 파업을 비교해보면 실제로 볼모가 되었던 측은 시민들이 아니라 파업노동자들은
도리어 더 자유로웠을 테니까 말이다.
시민의 발을 볼모로 했던 예는 파리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 때 그 진실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서울 시민들은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스스로 파업 노동자들과 같은 노동자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사회정의의 실현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고 믿었고
따라서 파업 노동자들에 연대하였다. 서울 지하철 노동자의 파업이 부분 파업이었던 것과
달리 완전 파업이었고(지하철, 시내버스, 기차가 한 대도 움직이지 않았다) 또 3주씩이나
계속되어 불편함의 정도도 몹시 심했지만 프랑스의 텔레비전 화면에서 "불편하지요/ 하지만
나는 파업노동자들을 100% 지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미소짓는 중년 여성을 볼 수
있었다. 파업 노동자들이 가두 시위를 벌일 때에는 연도의 시민들이 박수를 보냈다. 즉,
대부분의 파리 시민들은 스스로 볼모의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파업노동자들을 비난하는 대신에 노동자들의 복지 연금을 삭감하려했던 정부를 비난했다.
60%를 넘는 시민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고 정부는 끝내 두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에서 문제되었던 사안이 복지연금 삭감이었던 반면에 서울 지하철 노동자들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정리해고 등의 사안이었음에도 3주간이나 전면 파업을 벌였던
프랑스의 노동자들과 달리 부분파업을 벌였을 뿐이다. 그랬는데 프랑스의 파업은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 성공했음에 반해 서울의 지하철노동자들은 정부, 언론으로부터 매도당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민들로부터 등돌림을 당했고 결국 파업은 실패했다. 이와 같은 두
나라의 차이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프랑스의 시민들은
서로 연대하는 시민정신이라는 성숙된 근대 이념을 갖고 있음에 반해 한국의 시민들은 아직
그렇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 출처없이 캡춰만 해 놓아서 출처를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게 되는 대로 밝히겠습니다. -
- '시민을 볼모로'라고 외치며 노동자가 노동자의 편이 되는 것을 방해하던 언론의 탓입니까, 아니면 노동자가 노동자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탓입니까? 어느 쪽이든 이제는 노동을 팔아 먹고 살기 힘든 시대가 아니라 '노동을 팔기' 조차도 힘든 시대입니다. -










Chu Yuhozariski # Thursday, March 15, 2007 9:58:28 AM
Leo J. Leezealer677 # Friday, March 16, 2007 6:23:04 PM
노동자라는 자각이 없이 사회적 '연대'가 이루어지는 것은 힘드니까요. 희망이 없다고 불평만 할수는 없지만 힘든 현실이긴 합니다.